멕시코의 마약 전쟁을 오래 연구해 온 정치학자 라울 제페다 길(Raúl Zepeda Gil)은 한 가지 불편한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군인과 경찰, 그리고 갱과 카르텔 조직원은 정말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일까. 그는 폭력을 일종의 직업, 즉 노동 시장으로 보면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생각보다 흐릿하다고 말합니다. 수감자 조사 데이터와 청년 노동 통계를 바탕으로, 그는 젊은 남성이 폭력을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동기들을 정리했습니다. 덜 결정적인 동기부터 짚어 가면, 마지막에 가장 무거운 이유가 남습니다. 폭력을 미화하려는 글이 아니라, 왜 누군가는 그 길을 선택하는지를 이해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5위. 또래의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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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와 가족이 너를 인정해 줄 것이라고, 그들은 똑같이 말합니다." — 라울 제페다 길, '폭력 전문가들' (Aeon, 2026) |
제페다 길이 주목한 흥미로운 점은, 국가의 모병 메시지와 범죄 조직의 권유 멘트가 닮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양쪽 모두 "동료와 가족이 너를 존중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또래 집단의 시선에 민감한 시기의 젊은 남성에게, 이 인정은 단순한 명예 이상의 무게를 가집니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던 환경일수록 그 약속은 더 강하게 작동합니다. 한국의 30~50대 독자에게는 낯선 세계처럼 보이지만, '누가 나를 알아주느냐'가 선택을 흔드는 구조는 직장과 조직 어디에나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4위. 소속과 형제애
위험을 함께 감수하는 집단은 강한 결속을 만들어 냅니다. 제페다 길은 조직 가담이 순수한 경제적 계산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소속감과 목적의식 같은 비경제적 욕구도 채워 준다고 분석합니다. 고립되고 미래가 보이지 않던 청년에게, 자신을 받아 주는 무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가 됩니다. 떠나기 어려운 이유 역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폭력의 일상화는 끔찍하지만, 사람을 붙드는 힘은 의외로 평범한 '소속의 욕구'라는 점이 자료를 살펴보며 눈에 띄었습니다.
3위. 더 큰 명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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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더 큰 대의에 기여하게 된다는 서사가, 양쪽 모두에서 반복됩니다." — 라울 제페다 길의 분석을 요약하며 |
세 번째 동기는 '명분'입니다. 군은 국가와 안보를 내세우고, 범죄 조직은 가족 부양이나 자신들만의 규율·정의를 내세웁니다. 제페다 길은 양쪽 모두 더 큰 목적에 동참한다는 서사로 젊은이를 설득한다고 지적합니다. 명분은 위험한 일을 견딜 수 있는 의미로 바꿔 주고, 때로는 죄책감을 덜어 주는 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일 자체보다 '왜 하는가'라는 이야기가 사람을 움직인다는 점은, 직업을 다루는 어떤 조직에서도 통하는 원리입니다.
2위. 사회적 지위와 명성
두 번째는 지위에 대한 갈망입니다. 합법적인 경로로는 좀처럼 손에 넣기 어려운 존중과 권위를, 폭력을 다루는 직업은 비교적 빠르게 제공합니다. 제페다 길은 폭력 종사자를 '계급화된 직업(classed occupation)'으로 개념화하며, 이것이 사실상 사회적 상승 이동의 한 통로로 작동한다고 봅니다.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란 청년에게, 눈에 보이는 지위 상승은 강력한 유인입니다. 다만 그 지위는 늘 생명을 담보로 한 불안정한 것이라는 점을 그는 분명히 합니다. 빠른 인정과 빠른 추락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셈입니다.
1위. 가난에서 벗어나는 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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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 폭력은 일탈이 아니라, 빈곤에서 벗어나려는 직업적 선택이었습니다." — 라울 제페다 길의 분석을 요약하며 |
제페다 길이 가장 무겁게 짚은 동기는 결국 '경제'입니다. 그가 분석한 멕시코의 청년 다수는 학교를 일찍 떠나 저숙련 단순 노동을 전전하다, 더 나은 벌이를 좇아 폭력을 다루는 일로 옮겨 갔습니다. 그는 이를 '불안정한 노동에서 탈출(escaping precariousness)'하려는 직업적 이동으로 설명합니다. 핵심은 이들을 단순한 일탈자가 아니라, 합법적 일자리와 비교 가능한 '직업'을 선택한 노동자로 보아야 한다는 관점입니다. 합법적 폭력(군·경)과 불법적 폭력(갱·카르텔)이 같은 노동 시장에서 사람을 끌어온다는 그의 통찰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옵니다. 괜찮은 일자리가 부족할 때, 가장 위험한 일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로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과 사회적 맥락은 다르지만, 일자리의 질과 기회의 폭이 사람의 선택을 얼마나 깊이 좌우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다섯 가지 동기를 늘어놓고 보면, 인정·소속·명분·지위·생계라는 욕구 자체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것들입니다. 제페다 길의 글이 불편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이유는, 그가 폭력을 특별한 악인의 영역으로 밀어 두지 않고 평범한 동기의 결과로 읽어 내기 때문입니다. 같은 욕구가 어떤 사회 구조 위에 놓이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안정된 직업을 얻고 누군가는 폭력을 직업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차이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 아니라 그 사람 앞에 놓인 선택지의 폭일지도 모릅니다. 폭력의 동기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을 정당화하는 일이 아니라, 어떤 조건이 사람을 그 길로 밀어내는지를 직시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내 주변의 일터와 기회 구조는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지를 남겨 두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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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반 정보 제공을 위한 인사이트 큐레이션이며, 의료·금융·법률 결정의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개인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필요한 경우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
출처
- 라울 제페다 길(Raúl Zepeda Gil), 폭력 전문가들 (The violence specialists), Aeon, 2026.
- 라울 제페다 길(Raúl Zepeda Gil), 조직적 폭력, 불평등, 그리고 노동: 계급화된 직업으로서의 폭력 전문가 (Organised Violence, Inequality and Work), Critical Sociology, 2024.



